1970년대 후반부터 1988년까지 대공, 방첩, 공안 분야 수사 담당관으로 활동하였다. 1970년 경찰계에 입문하여 1980년대에 경기도지방경찰청 등에서 대공, 방첩 전문 수사관을 맡았다. 수많은 야당 인사와 학생 운동가들을 가혹하게 고문하여, 고문 기술자라고 불렸다. 1979년 남민전 사건과 1981년 전노련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불법 체포를 하기도 하였다.
1988년 군사정권이 붕괴한 이후 불법 체포 및 고문을 시도한 혐의로 수배되어 2000년에 체포되었고 재판 결과 징역 7년과 자격 정지 7년 형을 언도받았다. 그 뒤 2006년 11월에 출감하였다.[1][2][3] 출감 후 2008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생애
[편집]초기 활동
대한민국 공군에 입대하여 헌병에서 복무하다 전역하였다. 1970년 경찰 공무원에 채용, 순경으로 임용되었다. 군인 출신으로 경찰 재직 중 박중령이라는 별명과불곰, 반달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경찰 재직 중 사기꾼, 도박사범, 마약사범 등을 여러 명 검거하여 실적을 쌓고 능력을 인정받았다.
[편집]경찰관 시절
1970년대 경찰청 대공분실 형사로 전보되었고 1970년대 후반 대공분실장으로 승진했다. 대공분실장 재직 중 재야 인사 및 학생운동권 고문하는 등의 악행을 일삼았고, 1979년 간첩 용의자가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자, 현대중공업에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위장 취업하기도 했다. 이후 신분을 숨기고 7개월간 현대중공업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며 용의자의 동태를 파악하여 검거했다. 1979년 10월, 남민전 사건을 수사하였고 그 관련자들을 검거하였다.
그는 간첩 용의자와 야당 인사, 민주화 운동가들을 감시, 불법 체포하기 위해 엿장수, 월부책장사, 강냉이 장수 등으로 변장하여 활동하였다. 1979년 이른바 성실 근무로 청룡봉사상과 근정훈장 등을 수상받았다. 그 후 경기도 경찰청 공안분실장으로 부임하여 경기도 경찰청 공안분실장으로 있으면서 김근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수배 후 불법 체포하였다. 범인 취조 과정에서 고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관절 빼기, 볼펜심 꼽기 등의 고문 기술로 사람들을 고문하여 고문 기술자로 불렸다. 1981년 전노련 사건을 수사하여 그 관련자들을 전원 불법 체포하기도 하였다.
특히, 1985년에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고문했던 혐의는 1999년 검찰 조사에서 자수 이후 일부 인정하였다.[4] 그 외에도 1983년 함주명 조작 간첩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고문하였다는 증언도 있다.[5] 2003년 3월 31일에는 1984년 간첩조작사건에 간첩으로 몰렸던 전직 예비역 군인 출신 이장형 등이 법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6][7] 그 외에 반제동맹 사건 의혹도 받아왔다.[8]
[편집]퇴임 이후
일각에서 그의 고문행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어 오다가 1987년 2월, 제5공화국이 붕괴되고, 수감된 일부 야당 인사와 학생 운동가들이 석방되면서 그의 고문 행위를 주장했다. 이후 그에게 고문당했다는 인사들의 증언과 목격담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비판을 받았다.
1988년 스스로 경찰관직을 사퇴했다. 그런데 1988년 12월 퇴직 이후, 여러차례 공소가 제기되어 경찰은 그를 공개 수배하였다. 그러나 10년 10개월 동안, 집 근처 창고 뒤에 은신하고 있다가[9] 1999년 10월 28일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 자수[4][10]하였고, 1999년 11월에 구속 기소되었다.[11] 2000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11]과 자격 정지 7년이 확정되었다.[10] 이에, 그는 사과문을 발표하였는데, 정치인 김근태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여 옥중에 수감된 그를 면회하기도 했다. 그 후 2005년 10월 법무부에서 가석방 부적격 결정을 받았다.[11]
수감 생활 중 그는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들 중의 한사람인 김근태에게 사과하였으나, 김근태는 "이 전 경감이 제게 ‘눈을 감을 때까지 용서를 빈다’고 했지만, ‘이 양반이 진심으로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 왜 눈물을 안 흘리는 것이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김근태는 "이제 두려움은 많이 가셨지만 1980년대 중반에 무참하게 짓밟혔던 악몽이 되살아 났다. 면회가 끝난 후 돌아와서 이근안 전 경감의 용서를 빌고 싶다는 이야기가 진심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면서 조금 괴로웠다"라며 이근안의 사과에 대해 그 진의를 의심하였다.[11]
여주 교도소에서 복역을 하였고, 2006년 11월 7일 오전 0시 25분 경에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여주 교도소에서 7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였다.[11] 이근안은 출소 당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그 시대엔 애국인 줄 알고 했는데 지금 보니 역적이다. 세상사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라고 출소의 변을 대신했다. [12]하지만 11월 16일 오전, 민가협과 유가협 회원 20여 명이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찰청 민원실에서 그와 관련하여, 경찰의 사죄 및 철저한 진상조사를 주장하며 경찰청장 면담을 요구하며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11]
[편집]수형 생활과 종교인으로 변신
2005년 6월, 이근안은 옥중에서 통신 과정으로 신학교에 입학했다.[13] 수감 당시, 이근안은 신학 공부에 열중했었는데 한 때 모범수로 지목되기도 했다. 교도소에서 한국교정선교회를 통해 개신교를 접한 이근안은 출소한 다음 총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전도사 시절에는 신앙 간증 집회에 참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0월 30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산하 한 분파의 목사 임직식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정식 목사가 되었다.[14][13]
[편집]가족 관계
- 부인 : 신옥영[12]
- 아들 3남
[편집]평가
이근안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학생 운동가와 야당 인사 등을 대량 검거하고 고문하여 '고문 기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편집]관련 기사
- 이수영. ‘고문기술자’ 이근안 직격토로 1탄. 일요서울. 2010년 2월 9일.
- 이수영. ‘고문기술자’ 이근안 격정토로 2탄. 일요서울. 2010년 2월 16일.
- 민일성. 53명 집단지성 ‘이근안 쓰레기 행적’ 기록 ‘경악’ . 뉴스페이스. 2011년 12월 30일.
- 김도형. 김근태 전기고문 기술자는 이근안, 한겨레가 첫 보도. 한겨레신문. 2011년 12월 30일.
- 김혜영. 김근태 "공지영, 나 너무 옹졸한가". 뷰스앤뉴스. 2011년 12월 30일.
[편집]참고 자료
- 한홍구 (2001년 5월 22일). 이근안과 박처원, 그리고 노덕술. 《한겨레21》 (제360호). 2007년 12월 9일에 확인.
- 《KBS 인물 현대사》 2004년 4월 2일
[편집]같이 보기
[편집]주석
-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71770
-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70062.html
-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184223&category=N1§ion=03
- ↑ 가 나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 목사됐다”, 2008년 11월 1일 작성. 2008년 11월 1일 확인.
- ↑ “이근안이 자백하는 걸 보니 측은하기도 하대요. 하지만 지금 화해나 용서는 할 수 없습니다.”, 1999년 12월 1일 작성.
- ↑ 묻혀진 진실, '이장형 간첩조작사건' - 오마이뉴스
- ↑ ::천주교인권위원회::
- ↑ 이근안씨 직권구속..“10년간 집에서 은신” - munhwa.com
- ↑ 이근안씨, 집창고 상자뒤에 숨어 - munhwa.com
- ↑ 가 나 “출소 이근안씨 "그땐 애국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역적"”, 《조선일보》, 2006년 11월 7일 작성. 2012년 1월 1일 확인.
- ↑ 가 나 다 라 마 바 김근태 “용서 빈 이근안, 진심이었을까” 심경 토로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 ↑ 가 나 박연정 (2006년 12월). 《만기 출소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알려지지 않은 가족사》. 레이디경향. ISBN 9780001329829
- ↑ 가 나 [브리핑]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 목사 됐다- 중앙일보 뉴스
- ↑ “'고문기술자' 이근안, 목사 됐다”, 《조선일보》, 2008년 10월 31일 작성. 2008년 10월 31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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